
그리스도인은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이름의 굴레 속에 살아가는 이 세상의 현실을 결코 외면할 수는 없다.
197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고증한 영화 〈친구〉에는 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등장한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짧은 한마디이지만, 그 말 속에는 세상이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 곧 그 세상의 잣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얽힌 구조 속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뉜다.
인간의 눈, 하나님의 시선
성경이 기록된 고대 근동의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은 아들에게 왕위를, 제사장은 가문의 계승을 따라 직분을 물려주었다. 혈통이 권위였고, 가문이 곧 신분이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가문이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질서를 따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류의 문화와 질서 속에서 일하시되, 그 한계를 넘어 당신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어가셨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끈 지도자, 여호수아. 그 시대의 상식으로 본다면 그 자리는 모세의 아들 게르솜이 이어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영적 지도자의 자리도 세습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 시대였다.
운명을 가른 한 가지
그러나 하나님은 세속적 가치를 넘어서, 뜻밖에도 가문도 학벌도 권력도 없던 평범한 한 사람,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부르셨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주목할 이유가 없던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를 들어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 왜였을까? 오늘 우리는 말씀 속에서, 여호수아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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